[지음 활동]학생들이 직접 말하는 학생인권 토론회(2023년 5월)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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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19일에 국회에서 열렸던 '학생들이 직접 말하는 학생인권' 토론회 자료집입니다.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의 공현 활동가, 안병석 활동가가 발제 한 꼭지를 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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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인권을 위한 근로기준법, 학생인권법이 필요한 이유

 

공현

학생인권법과 청소년인권을 위한 청소년-시민전국행동

 

 

 

기업/학교의 자율성보다 앞서는 인간의 존엄성

 

「근로기준법」은 임노동 계약을 맺은 모든 사업장에 적용된다. 법에 따라 노동시간 상한 기준, 일정한 휴일 및 유급휴가, 차별 없는 균등한 처우 등을 노동자에게 보장하도록 하고 있다. 「최저임금법」도 모든 노동자가 시급이든 월급이든 임금의 최저선을 보장한다. 「근로기준법」이 정한 기준을 벗어나는 노동조건은 불법이며 그런 계약을 맺어도 무효가 된다.

이런 법이 있는 이유는 노동자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서다. 산업마다, 기업마다 일하는 방식도, 노동의 내용도, 문화도 모두 다름에도, 「근로기준법」이나 최저임금 제도는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 최소한 이정도의 선은 모두에게 지켜져야 한다고 정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장려함에도, 노동자의 인권에 관해서는 이와 같은 명확한 기준을 지키라고 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이 기업의 자율성보다 더 우선하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또한 「근로기준법」에서는 사용자(사장, 기업)의 권리를 다룬 내용을 매우 찾아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사용자는 노동자와의 계약에서 보통 유리한 입장에 있고, 또 사용자가 피해를 입더라도 이는 일반적인 「형법」이나 민사적 손해배상 등의 방법으로 충분히 다룰 수 있다. 「근로기준법」의 취지에도 맞지 않기에, 만약 사용자의 권익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가 필요하다면 별도의 법이 만들어지는 것이 적절하다.

노동자의 의무를 거론한 내용도 거의 없다. 노동자에게는 근로계약, 취업규칙, 업무 지시 등으로 노동의 과정에서 이미 많은 의무와 책임이 부과된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일을 하고 어떤 의무를 지게 할지야말로 산업마다, 기업마다 다른 문제이다. 그렇기에 “근로자와 사용자는 각자가 단체협약, 취업규칙과 근로계약을 지키고 성실하게 이행할 의무가 있다.”(제5조)라는 원칙이 있으면 될 뿐, 구체적 사항은 각 일터에서 정하는 게 적절하다.

 

 

학생인권을 경시해온 한국 교육의 역사

 

서두에 「근로기준법」 이야기를 한 이유는, 학생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제도가 필요한 이유가 「근로기준법」이 필요한 이유와 흡사하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 간 학생은 학교 안에서 지시받고 통제받는 대상으로 자리해 왔다. 학교규칙에 의해서든, 문화와 관행에 의해서든, 교사의 자의적 권력 행사에 의해서든 학생들의 인권은 매우 쉽게 침해당해 왔다. 하지만 학생들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어려운 지위에 놓여 있고, 또한 학생의 인권이 무엇인지 자체에 대해서도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지지 않은 채 방치되어 왔다.

1990년대 이후 대두한 청소년인권운동은 두발·복장의 자유(개성 실현의 권리), 체벌 및 언어폭력·모욕적 대우의 금지, 정규 수업 시간 외 보충·자율학습에 대한 강요 중단, 소지품 검사·압수의 폐지를 비롯한 사생활의 자유 보장, 학교 내 언론·표현·집회·결사의 자유 보장, 학교·교사에 의한 종교 강요 중단, 학생 자치 활동의 자율성, 학교 운영 참여권 등을 주요 학생인권 문제로 제기했다. 이 운동은 10여 년에 걸쳐 학생인권 문제를 정부가 해결해야 할 사회 문제로 부상시켰고, 그 방법 중 하나로 학생인권을 위한 입법을 추진했다.

처음부터 학생인권 문제 해결의 방법으로 법을 만드는 것이 거론된 것은 아니었다. 예컨대 두발자유 운동에서는 원래 교육부에 학교들에 두발자유화 지침을 내릴 것을 요구했다. 인권 보장의 책무가 있는 중앙정부의 행정적 조치만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봤던 것이다. 더군다나 사적 영역도 아니고 국가가 책임지고 운영하는 공교육기관에서 벌어지는 인권 문제이니만큼 주무 부처가 의지를 갖고 감독한다면 그리 어렵지 않을 듯했다. 그러나 2000년, 2005년 두 번에 걸쳐 교육부는 ‘두발규정은 각 학교가 알아서 결정할 문제이고, 학생들의 의견을 민주적 절차로 수렴하여 자율적으로 정하라’라는 방침을 발표했다. 정부가 학생인권 보장 요구에 학교의 자율이라고 대꾸한 역사가 20년이 넘은 셈이다.

교육부는 시종일관 학생인권의 문제들에 ‘학교 자율’ 또는 ‘각 지역 교육청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답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입장은 ‘인권’이라는 말이 내포한 의미와 모순된다. 인권은 인간의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권리이자 존엄의 문제이고, 인권 보장은 정부와 법의 목적이자 출발선이다. 정부가 최저임금보다 돈을 더 적게 주든 말든, 하루에 노동을 12시간을 시키든 말든 기업의 자율이라고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정부가 학교의 자율 사항이라는 입장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않고 있는 것은, 결국 학생의 인권 문제를 진지하게 ‘인권’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며, 학생인권을 좀 침해하거나 제한해도 되는 것으로 경시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한국의 학교가, 교육 제도가, 교육 당국이 학생인권 문제에 관해 1980년대이든 2000년대이든 2020년대이든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학생인권 제도화의 의의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2005년 이후, 법을 만들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법을 만들고 바꾸는 것은 민주주의에서 사람들의 주요한 의사 반영 통로이다. 정부는 법이 정한 것에 기반하여 운영되어야 한다. 따라서 법에 학생의 인권이 무엇인지 그 내용을 명시하고, 정부와 학교가 학생인권 보장을 위해 구체적 책무를 지도록 하는 것이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입법 운동의 목표였다.

처음에는 「초·중등교육법」을 개정하여 그 안에 학생인권에 관한 내용을 담으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2006년, 민주노동당 최순영 국회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은 자율보충학습 금지, 두발복장규제 금지, 체벌 금지, 차별 금지 등을 담았고, 학생회의 자치권과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 참여를 보장하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이 최초의 학생인권법안은 국회 논의 끝에 원안은 대부분 잘려나갔고, 「초·중등교육법」 제18조의4 “학교의 설립자·경영자와 학교의 장은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에 명시된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여야 한다.”라는 조항이 추가(2007년 12월)되는 데 그쳐야 했다. 이후 2008년에 민주노동당 권영길 국회의원이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재발의했지만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이 법 개정은 학생인권을 제도화하려는 최초의 시도였다는 의의가 있으며, 제18조의4의 신설은 「초·중등교육법」에 학교의 학생인권 보장 의무를 담았다는 의의가 있다. 하지만 실제로 학교 현장과 우리 사회에서의 논쟁과 갈등은 학생인권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학교가 이를 보장하기 위해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다. 침해해선 안 되는, 실현해야 하는 학생인권의 내용이 무엇인지, 학교와 교육당국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내용이 없는 이 조문은 현실에서 힘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이러한 노력이 있었기에 학생인권조례도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점은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은 2006년 광주에서 처음 시민사회단체들에 의해 추진되었고, 2008년에도 경남에서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이 있었다. 그러다가 학생인권조례 제정 실현이 가시권에 들어온 것은 교육감 직선제 실시와 소위 ‘진보 교육감’의 출현에 힘입어서였다. 경기도에서는 2009년, 김상곤 교육감이 학생인권조례제정자문위원회를 꾸리고 연구를 의뢰해 교육청 차원의 학생인권조례안을 최초로 내놓았다. 이 조례안은 1기 때는 통과되지 못했고, 2010년 지방선거에서 김상곤 교육감이 재선하고 더불어민주당이 경기도의회 다수를 점한 이후에야 통과될 수 있었다. 경기도에서 첫발을 뗀 이후로는 광주광역시, 서울특별시, 전라북도에서 총 4개 광역지자체에서 2013년까지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됐다. 그리고 다섯 번째 학생인권조례는 2020년 충남에서, 여섯 번째는 2021년 제주특별자치도에서 만들어졌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의 성과는 명백하다.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면서, 거의 아무런 제재 장치가 없던 학교의 학생인권 침해 문제에 대해 통제와 개입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상징적이고 대표적인 문제인 두발규제나 체벌 같은 경우, 2010년 이전까지는 각종 실태조사에서 중고등학생 80% 이상이 두발규제나 체벌을 심하게 경험한다고 응답하곤 했다. 그러다가 2010년대에 들어 두발규제나 체벌의 경험률은 크게 떨어지고, 폭력과 규율의 정도와 강도도 약해졌다.(물론 체벌의 감소는 서울시교육청의 체벌금지 선언,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 「아동복지법」 개정 등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 학생인권조례는 우리 사회의 상식과 감각을 크게 변화시켰는데,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중고등학생들은 남학생이라면 반삭 내지는 이른바 ‘상고머리’를 하고 여학생이라면 단발머리나 묶은 긴 머리만을 하는 게 흔한 풍경이었던 것이다.

국가인권위 조사 등에서는 학생인권조례 시행 지역에서 인권침해가 유의미하게 빈도가 적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박환보(2021)는 학생인권조례 시행 지역과 미시행 지역의 학생들에 대한 설문조사를 통해, 인권침해적 학교 환경(교사의 폭력, 개인정보 공개, 용의복장검사 및 소지품검사 등)을 줄이는 데에 대해 유의미한 차이를 낳고 있다고 분석했다.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지역의 ‘그렇다’는 응답률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지역의 ‘그렇다’는 응답률

차이

두발 길이나 모양 제한 경험

66.1%

39.6%

26.5%p

면티/양말 색깔 제한 경험

32.2%

17.5%

14.7%p

치마/바지 길이, 폭 제한 경험

68.7%

55.4%

13.3%p

화장/미용제품 제한 경험

71.8%

62.1%

9.7%p

수업외시간 핸드폰 제한 경험

84.0%

74.4%

9.6%p

동의 없는 소지품 검사 경험

23.2%

11.5%

11.7%p

직접 체벌 경험

32.4%

23.5%

8.9%p

간접 체벌 경험

40.6%

30.5%

10.1%p

강제성 서약서, 동의서 경험

24.4%

14.7%

9.7%p

 

반면, 학생인권조례의 한계도 명확하다. 학생인권조례가 비록 미시행 지역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긴 했지만, 조례는 특정 지역의 자치법규이기 때문에 그 지역을 넘어서서는 직접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 인천 지역 학생들이 두발규제에 대해 항의하자 교사가 (바로 10분 거리인) ‘싫으면 경기도 부천으로 이사 가라’라고 했다는 일화는, 인권이 보편적으로 보장되지 않을 때의 블랙코미디를 보여 준다.

일각에서는 학생인권조례로 인해 학생인권이 과도하게 보장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론 학생인권조례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도 확인되고 있다. 가령 2020년 발표된 서울시교육청의 〈제2차 서울 학생인권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신체에 대한 폭력’(구타형 체벌)이 발생한다는 응답률(‘전혀 발생하지 않는다’ 외의 응답)도 초등학생 16.9%, 중학생 28.6%, 고등학생 22%에 이른다. ‘간접체벌’(강요형 체벌)의 경우는 중학생은 21.0%, 고등학생은 9.9%가 ‘자주/가끔 발생한다’고 응답한 것 역시 심각하다. 같은 조사에서 ‘머리모양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지’ 물은 것에는, ‘그런 편이다’ 또는 ‘매우 그렇다’라고 응답한 비율은 중학생 중 57.3%, 고등학생 중 52.0%에 그쳤다. ‘복장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지’ 물은 문항에서는 이 비율은 중학생 52.1%, 고등학생 58.3%였다. 또한 종교계 학교에서 해당 사항이 있는 중학생 중 30.5%, 고등학생 중 45.1%가 종교 시간에 참석을 원치 않아도 대안을 요청할 수 없다고(‘전혀 그렇지 않다’ + ‘그렇지 않은 편이다’) 답했다.

최근 벌어지는 학생인권조례 폐지 또는 후퇴 움직임은, 물론 인권에 대한 무지와 오해, 차별 의식, 극우적 신념에 의해 추동되고 있지만, 학생인권조례의 또 다른 한계를 간접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학생인권조례에 의해 학생인권 보장이 특정 지역, 특정 교육감, 특정 학교의 것으로만 여겨지면서 학생인권은 우리 사회에 당연한 상식이자 원칙으로 자리 잡지 못했고 특정 진영만의 것, (인권 보장을 원하는 학생들에겐) 행운의 산물, (학생들을 ‘잡길’ 원하는 사람들에겐) 원성의 대상 정도로 격하되었다. 학생인권이 보장되는 학교가 모든 지역, 모든 학교의 타이틀이 되지 못할 때, 학생인권은 계속 비교-대조의 대상이자 분란의 씨앗처럼 여겨진다. 학교 현장에선 머리를 잡을 거냐 말 거냐, 교복 위에 외투를 허가할 거냐 말 거냐, 휴대전화를 압수할 거냐 말 거냐 같은 논란이 지속되어 피로감이 높아졌다. 학생인권조례는 학교 현장에서 인지도가 높지도 않고 학생들에게 학생인권을 보증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도 않음에도 끊임없이 진영논리적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조례를 넘어 학생인권법이 필요한 시점

 

학생인권법은 이러한 조례의 한계를 넘기 위해, 그리고 학생인권조례가 부당하게 공격당하는 와중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학생인권법은 2006년 국회에서부터 논의되어온 역사가 깊은 제도적 대안이며, 2018년 교육부가 실시한 〈학생인권보장을 위한 법제화 방향 및 이슈 탐색〉이라는 연구 용역에서도 “A ‘아동·청소년인권법 제정’, B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행법률 제정’, C ‘교육기본법 및 초·중등교육법 개정’, D ‘법률 중심의 초·중등교육법 개정’, E ‘조례 중심의(학생인권조례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이라는 다섯 가지 제안을 내놓은 바 있다. 현재 국회에 발의되어 있고 시민사회단체에서 주장하고 있는 학생인권법은 이 중에서 D와 E를 추진하려는 것이고, 길게 봐서는 학교 범위를 벗어난 A와 B 역시 이뤄져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학생인권법의 내용과 의의를 설명하고자 한다. 이 부분은 현재 국회에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국회의원 대표로 발의되어 있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기준으로 한다.

 

① 학생인권 침해 금지 및 학생인권조례 근거 강화

제17조(학생의 인권보장) ① 학생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 신체의 자유,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 자치 및 참여의 권리 등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이 보장하고 있는 권리를 가진다.

② 제1항에 따른 학생인권 보장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은 시·도의 조례로 정한다.

 

제17조의2(학생인권 침해행위의 금지) 학교에서는 다음 각 호의 행위를 할 수 없다.

1. 학생에 대하여 모욕을 주거나 신체적 고통을 가하는 행위

2. 학생의 두발·복장을 검사하는 등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

3. 학생의 동의 없이 소지품 등 개인의 사적 생활에 속하는 물품들을 검사, 압수하는 행위. 단, 학생과 교직원의 안전을 위하여 긴급한 필요가 있는 경우는 예외로 한다.

4. 가정환경, 성적(成績), 외모, 성별, 국적, 종교, 장애, 사상·신념, 성적(性的)지향, 가족형태 또는 가족상황, 임신 또는 출산, 징계 등 일체의 이유에 의한 차별행위 단, 저소득층 및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우대하는 조치는 예외로 한다.

5. 학생의 동의 없이 학생을 정규학습시간 외 교육활동에 참여하도록 하는 행위. 단, 법령이나 고시에 의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는 예외로 한다.

6. 양심에 반하는 내용의 서약을 강요하거나 종교행사 참여 및 종교과목 수강을 강요하는 행위

7. 성적 괴롭힘을 가하거나 유발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행위, 그리고 성적 요구에 따른 이익이나 불이익 공여의 의사표시를 하는 행위

8. 그 밖에 교육부장관 또는 교육감이 학생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고 판단하여 고시하는 행위

 

가장 먼저 학생인권법에서는 학교에서 가장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고 명백히 사라져야 할 학생인권침해 행위들(체벌, 두발복장규제, 각종 차별, 보충·자율학습 강요, 종교 강요, 성추행 등)을 금지함을 명시하고 있다. 이는 학생인권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밝히는 것이 학생인권 침해를 근절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두발복장규제, 체벌과 언어폭력, 차별 행위, 자율·보충학습 강요, 종교 강요, 성폭력·성희롱 등 그동안 이슈화되어온 대표적 문제들을 학교가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고, 학교 현장에서의 학생인권 침해를 근절하는 데 큰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마치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에서 최저임금, 노동시간, 휴가, 차별, 부당노동행위, 직장 괴롭힘 등을 규정함으로써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인권침해 문제들을 억제한 것과 비견될 만하다.

 

 

② 인권을 침해하거나 하자가 있는 학교규칙의 시정

제8조(학교 규칙) ① 학교의 장(학교를 설립하는 경우에는 그 학교를 설립하려는 자를 말한다)은 법령의 범위에서 학교 규칙(이하 “학칙”이라 한다)을 제정 또는 개정할 수 있다. 다만, 학칙 중 학생자치활동, 학생생활과 관련된 사항을 제정 또는 개정하고자 할 때에는 총학생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② 학교의 장은 학칙을 제정 또는 개정하려고 하는 때에는 사전에 전체 학생을 비롯한 학교 구성원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여야 한다.

③ 학교의 장은 학칙이 제정되거나 개정된 때에는 이를 지도·감독기관(국립학교인 경우에는 교육부장관, 공·사립학교인 경우에는 교육감을 말한다. 이하 "관할청"이라 한다)에 신고하여야 한다.

④ 관할청은 다음 각 호의 1에 해당하는 학칙의 변경을 명할 수 있다.

1. 학칙의 제·개정 절차상의 하자가 있는 경우

2. 학칙의 내용이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에 명시된 학생인권을 침해하는 경우

3. 기타 관계 법령 및 조례를 위반하는 경우

⑤ 학칙의 기재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법체계상 현재 「초·중등교육법」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학교에서 학교규칙 등에 의해 인권침해가 일어나더라도 이를 시정하고 제재할 수단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현행법은 학칙을 학교장(정확히는 기관으로서 학교)의 재량으로 두고 있고, 이에 대해 교육감이나 정부가 감독하거나, 문제가 있을 시 고치도록 할 절차나 권한을 전혀 두지 않고 있다. 이는 범죄가 발생해도 경찰이 개입하지 않고, 복지시설에서 인권침해가 일어나도 보건복지부도 지자체도 관여할 수 없으며, 최저임금 미지급 등이 일어나도 고용노동부·노동청이 구제하지 않는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 이런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학생인권법안에서는 학교 규칙 제개정에 관해 여러 요건을 두고, 지도·감독기관이 문제가 있는 학칙을 시정할 수 있도록 했다.

 

③ 학생 자치 및 민주적 참여 보장

제17조의3(학생자치활동) ① 학생은 동아리, 소모임, 언론활동 등 자치활동을 할 권리를 가지며, 학교는 학생자치활동의 활설화를 위하여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하여야 한다.

② 학생자치활동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보장되어야 하며, 학생의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제17조의4(학생회) ① 학교에 학생들의 보통, 평등, 직접, 비밀선거에 의하여 구성되는 총학생회를 둔다.

②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총학생회 운영의 민주성과 효율성을 위하여 그 산하에 학년별·학급별 학생회를 구성·운영할 수 있다.

③ 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구성되는 총학생회와 제2항의 규정에 의하여 구성되는 학년별·학급별 학생회의 임원의 자격 기준을 정함에 있어 성적·성별·종교·징계 등에 의한 차별을 두어서는 아니 된다.

④ 총학생회는 다음과 같은 사항에 대해 심의·의결한다.

1. 학칙 중 학생자치활동, 학생생활과 관련된 사항의 제·개정안 발의

2. 건강·안전 등 학생복지 및 학교생활과 관련된 의견

3. 제10조제1항의 규정에 의한 기타 납부금의 징수 및 사용과 관련된 의견

4. 학교운영위원회의 학생위원 선출

5. 총학생회의 예산안 및 결산

6. 학생회칙에 관한 사항

7. 그 밖에 학칙에 의하여 총학생회의 심의·의결이 요구되는 사항

⑤ 총학생회가 심의·의결한 사항 중 학교의 장 또는 학교운영위원회에 제출할 필요가 있는 사항은 학교의 장 또는 학교운영위원회에 제출할 수 있다. 이 경우 학교의 장 및 학교운영위원회는 그 사항을 처리하여야 한다.

⑥ 학생회의 설립․운영 및 지원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국립학교의 경우에는 교육부령으로, 공립․사립학교의 경우에는 시․도의 조례로 정하되, 구체적인 사항은 학생회칙으로 정한다.

 

제31조(학교운영위원회의 설치) ② 국립ㆍ공립 학교에 두는 학교운영위원회는 그 학교의 교원 대표, 학부모 대표, 학생 대표 및 지역사회 인사로 구성한다.

 

앞서 학교 규칙에 관한 부분에서 학생회의 동의를 얻도록 하는 조문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조건이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학생회 등 학생자치활동에 자율성이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학교에도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학생자치와 참여가 보장되어야 하기도 하고, 또 이러한 권리는 중요한 학생인권이기도 하다. 따라서 학생인권법에서는 학생자치활동의 자율성, 독립성과 학교의 행재정적 지원 책무를 명시했고, 학생회가 학칙 제개정안 발의 등을 의결할 수 있으며,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 대표가 참여할 수 있게 했다.

 

④ 교육청의 의무 명시, 구제 기구 설치

제18조의5(교육감의 책무) 교육감은 학생인권을 증진하기 위하여 다음 각 호의 사항을 포함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야 한다.

1. 인권교육 실시

2. 학생인권실태조사 실시

3. 학생인권종합계획 수립

4. 학생인권 침해에 대한 적절한 전문상담 및 구제체계 구축

5. 학생인권정책 심의를 위한 민관합동 학생인권위원회 설치

 

제18조의6(학생인권옹호관 등의 설치·운영) ① 학생인권 침해 사안에 대한 조사 및 구제, 학생인권 증진 및 인권친화적 교육문화 조성의 업무를 집행하기 위하여 특별시ㆍ광역시ㆍ특별자치시ㆍ도ㆍ특별자치도(이하 “시·도”라 한다) 교육청에 학생인권옹호관을 둔다.

② 학생인권옹호관의 효율적인 업무 수행을 위하여 시·도 교육청에 학생인권센터를 둔다.

③ 제1항에 따른 학생인권옹호관 및 제2항에 따른 학생인권센터의 설치·운영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은 조례로 정한다.

 

제18조의7(학생인권 침해 구제신청) ① 학생이 학교에서 인권을 침해당하였거나 침해당할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학생을 비롯하여 누구든지 학생인권옹호관에게 그에 관한 구제신청을 할 수 있다.

② 제1항에 따른 구제신청의 절차와 방법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교육감이 정한다.

 

제18조의8(학생인권 침해사건에 대한 조치) ① 학생인권옹호관은 조사 중이거나 조사가 끝난 사건에 대하여 사건의 공정한 해결을 위하여 필요한 구제 조치를 당사자에게 제시하고 합의를 권고할 수 있다.

② 학생인권옹호관이 사건을 조사한 결과 학생인권 침해가 일어났다고 판단할 때에는 가해자, 그 소속기관 또는 감독기관(이하 “소속기관 등”이라 한다)의 장에게 다음 각 호의 사항을 권고할 수 있다.

1. 학생인권 침해행위의 중지

2. 원상회복, 손해배상 그 밖에 필요한 구제조치

3. 학생인권 침해에 책임이 있는 사람에 대한 주의, 징계, 인권교육 등 적절한 조치

4. 동일하거나 유사한 학생인권 침해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

5. 법령·제도·정책·관행의 시정 또는 개선

③ 학생인권옹호관은 조사 결과 사안이 중대하거나 재발의 방지를 위하여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사안에 대하여는 학생인권위원회의 심의를 요청하여 그 결과를 받아 권고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④ 제2항 및 제3항에 따라 권고를 받은 소속기관등의 장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권고사항을 성실히 이행하여야 하며, 그 조치결과를 학생인권옹호관에게 보고하여야 한다.

⑤ 제2항 및 제3항에 따라 권고를 받은 소속기관등의 장은 그 권고의 내용을 이행하지 아니할 경우에는 그 이유를 학생인권옹호관에게 통지하여야 한다.

⑥ 학생인권옹호관은 구제신청을 접수한 후에도 학생인권 침해가 계속될 염려가 있고, 이를 방치할 경우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가 발생한다고 인정할 때에는 구제신청에 대한 결정 이전에 피해자의 신청 또는 직권에 의하여 가해자, 그 소속기관 등의 장에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의 조치를 하도록 권고할 수 있다.

1. 학생인권 침해의 중지

2. 학생인권 침해를 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공무원 등을 그 직무에서 배제하는 조치

3. 그 밖에 피해자의 생명·신체의 안전을 위하여 필요한 사항

 

이러한 학생인권이 적극적으로 실현되도록 하기 위해선 교육청의 책무를 포함해 구제절차나 관련 기구가 필요하다. 현재는 학생인권 침해가 일어나더라도 이에 대해 호소하거나 구제를 요청할 창구가 마땅치 않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과부하가 걸려 있고 학교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지 못해 권고가 불수용되기 일쑤다.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지역에선 교육청에 민원을 낼 수밖에 없는데, 교육청 민원은 사실 민원 담당자가 적당히 답변만 하면 절차적으론 합법이고, 내용적으로도 학생인권의 입장을 반영하여 처리되는 경우가 드물다. 따라서 지역마다 노동청이 있고 근로감독관이 있듯이, 교육청마다 학생인권옹호관을 두고 인권침해에 대한 구제 역할을 하도록 한다. 나아가 교육감이 학생인권실태조사 실시, 학생인권종합계획 수립 등 학생인권 신장을 위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도록 하고 있다.

 

 

이미 학생인권조례가 있는데 학생인권에 관한 법을 왜 또 만드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게 된다. 그러나 학생인권조례는 일부 지역에만 있을뿐더러 그 실질적 영향력과 효력 면에서도 한계가 뚜렷하다.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법제도는 오히려 너무 부족하다. 학생인권법이 왜 필요하냐는 항변은,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이 왜 필요하냐는 말만큼이나 단견이다. 오히려 학생인권법이 제안되고나서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왜 수백만 명의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국회와 정부의 응답이 없었는지를 물어야 마땅하다.

학생인권법이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는 학교의 자율성보다 학생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우선하기 때문이다. 교육 활동은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고 지키는 속에서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국회와 정부에 인권 보장의 책무가 있기 때문이다. 학생인권법은 학생을 위한 「헌법」이고 「근로기준법」이며 「가정폭력특별법」이다. 학생인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학교에도 민주주의와 인권이 당연한 상식으로 뿌리내려야 한다고 믿는다면 학생인권법의 입법에 힘을 보태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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