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사람은 아랫사람이 아니다 - 말로만 학생인권 존중을 외치는 것을 넘어

#어린사람은아랫사람이아니다 캠페인의 일환으로, 여러 위치에서 나이차별적 언어문화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성찰하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 두 번째로 오래전부터 학생들과 '같은 말'을 쓰기를 고민하고 실천하고 있는 고등학교 교사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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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의 밀림이 훼손되는 것을 비판하면서 육식을 계속할 수는 없었고, 기후위기에 대해 말하면서 수입농산물을 가격이 저렴하다고 먹을 수는 없었다. 적당히 올바른 말을 하는 것으로만 멈추는 것은 오히려 기만적이라고 생각했다. 교사가 되고 나서 학생을 같은 인간으로서 존중하고자 한다고 학생들에게 말하고, 학생들이 교사인 나를 편한 존재로 느끼기를 바랐지만 실제로 나의 모습은 다른 교사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 서울 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에 조금씩 참여하게 되고 학생인권과 청소년인권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면서 말로만 학생인권 존중을 외치는 것은 교사로서 그럴듯해 보이긴 하지만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같은 인간으로서 동등한 지위로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해도 서로가 느끼는 학교 안의 각자의 위치는 다를 수밖에 없었기에 교사의 선의정도에 그칠 뿐이었다. 선의나 호혜적인 것이 아닌 관계가 되기엔 부족했고 다른 시도가 필요했다. 


어느 해부터 학생들과 ‘같은 말’을 쓰고자 했다. ‘관계가 완전히 평등해지길 원하지만 학교의 운영 방식과 권력 구조 형편상 그럴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지’ 하고 자위하지 말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의 의지를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처음엔 몇 명의 학생과 서로 반말을 하는 관계를 가져보았고 나중엔 나와 만나는 모든 학생들에게 당부했다. 반말이 편하면 반말을 해도 되고 존댓말이 편하면 존댓말을 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난 기본적으로 존댓말을 할 것이고 나에게 반말을 하는 학생하고는 서로 반말을 하고 싶다고. 존댓말을 할 때는 호칭도 이름 뒤에 ‘씨’ 또는 ‘님’을 붙여 사용하고 있다. 매년 나에게 반말을 해주는 학생도 있고 그들은 나를 부를 때는 이름을 부르곤 한다.


당연히 서로가 쓰는 말이 비슷하다고 모든 관계가 평등해지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나와 학생들은 학교 안에서 위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적어도 그 위계가 당연한 것이 아니며 계속해서 없애나가고 싶다는 마음을 학생들과 공유하고 있다. 그렇기에 학생들도 나에게 기꺼이 반말을 해주는 것 같다. 특히 나에게 반말을 하는 학생들이 후배들에게 존댓말을 하거나 후배와 함께 반말을 하는 모습을 볼 때, 그들이 나와 같은 의지를 공유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렇기에 나의 행동의 변화가 나와 몇몇 학생의 관계에서 끝이 나지 않고 학교 안의 선배와 후배 그리고 학생들이 앞으로 만날 많은 어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이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어린 사람이 아랫사람이 아니라고 믿는다면 무엇이든 뭔가 시작해보았으면 좋겠다. 관계를 바꾸기 위해 시도할 수 있는 것은 많을 것이다. 그중 하나로써 상호존칭어를 쓰거나 서로 반말을 쓰는 것도 있으니 한 번 해보시길 추천한다.


- 이윤승(연대하는 교사잡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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