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지음][노동자신문] 학생을 인간답게 대우하는 교육이 중요한 이유

2023-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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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을 인간답게 대우하는 교육이 중요한 이유


1987년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노동자 대투쟁에 나서며 내걸었던 요구 중 하나가 ‘두발자유화’였다는 것은 꽤나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처음으로 파업 투쟁에 나섰던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그 의미가 ‘학교에서 중요한 일을 하는 노동자라고 인정받은 것’이었다고 말한다. “임금 인상 투쟁이 아닌 사회적 지위 인정 투쟁이었다.”(《한국 교육의 오늘을 읽다》, 교육공동체 벗, 2023, 147쪽)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억압받고, 능력주의로 포장된 위계 속에 차별을 겪게 된다. 노동운동은 이에 저항하여 평등한 존엄과 자유를 쟁취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의 초·중·고 학교에서 학생들이 가장 먼저 제기했던 문제도 ‘두발자유화’였다. 2000년, 온라인 서명운동과 거리 캠페인 등으로 시작된 ‘노컷운동’은 처음으로 학생인권 문제를 사회에 공론화시킨 대중적 운동이었다. 그로부터 6년 후,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이 대표 발의했던 ‘학생인권법’(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국회를 거치며 딱 한 줄, “학교의 설립자·경영자와 학교의 장은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에 명시된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여야 한다.”라는 조문만 남아 통과되었다. 이 조항은 초·중등교육법에 학교의 학생인권 보장 의무가 명시되었다는 성과는 있지만, 아무런 구체성이 없었기에 학교 현장에 잘 가닿지 못했다.

두발자유화를 비롯해 학생인권에 조금이나마 가시적 진전이 이뤄진 건 2010년에 이르러서였다. 경기도에서 최초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고, 이후 3년간 광주광역시, 서울특별시, 전라북도까지 총 4개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던 것이다. 2020년 충남과 제주에서도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져 현재 총 6개 지역에 학생인권조례가 존재한다. 학생인권조례로 인해 그 이전에는 거의 모든 중·고등학교에 있었던 두발복장규제가 지금은 50~60%가량에 있는 걸로 조사되며, 그 규제 정도도 완화되었다. 야간자율학습 강요나 소지품 검사와 같은 악습도 유의미하게 감소했다. 학교 체벌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2011) 및 아동복지법 개정(2015)이 더해져 최근 조사에선 경험률이 20% 아래로 떨어졌다.

학교에서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고 학생을 인간답게 대우하는 것은 사회 전반의 민주주의와 인권 진전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수많은 사람이 학교에서 권위주의적인 위계와 상명하복의 문화를 겪어 왔고, 권력자의 편의에 따라 사람을 함부로 대하고 인권을 짓밟아도 된다는 규범을 받아들여 왔다. 이는 일터에서도 노동자들의 두발복장을 단속하고, 휴대전화를 금지하며, 정치활동을 규제하는 것과도 연결된다. 게다가 이런 폭력적인 억압은 학생들을 경쟁과 서열화로 몰아넣는 수단이기도 하다.

최근 서울·충남에선 학생인권조례 폐지 주장이 주민발안 형태로 나타나고 있고, 여타 지역에서도 학생인권조례를 후퇴·축소시키려는 움직임이 거세다.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외치는 사람들이 주로 내세우는 논리 중엔 ‘학생인권 때문에 학생이 교사에게 대든다’, ‘학력이 떨어진다’(근거도 없지만) 등이 있다. 이는 결국 학생인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이란, 윗사람 말에 잠자코 따르며 얌전히 입시 공부만 하는, 체제와 권력에 순응하고 경쟁에 열심인 학생이라는 의미이다. 그런 교육은 노동자를 위한 교육도, 인간을 위한 교육도 아니다. 학생인권은 전국 모든 지역에 적용되는 ‘학생인권법’으로 오히려 확대되어야만 한다. 첫째론 학생도 인간이기 때문에. 둘째론 모든 사람의 존엄이 존중받고 인간으로 대우받는 세상을 위해서.

 - 공현(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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